KOREA

한국 테니스 이야기

한국 테니스의 시작은 서울의 명문 클럽이 아니라 남해의 작은 섬이었습니다. 거문도의 첫 코트에서 아파트 단지의 초록 펜스, 그리고 멜버른의 4강 신화까지 — 140년 한국 테니스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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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거문도에서 시작된 140년

한국에 테니스가 처음 들어온 곳은 1885년, 전라남도 거문도입니다. 거문도 점령 사건으로 섬에 주둔한 영국 해군이 진지와 함께 테니스장을 지었고, 주민들과 어울리며 테니스를 전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때 만들어진 해밀턴 테니스 코트가 한국 최초의 테니스장입니다. 지금도 거문도에는 인구 대비 테니스장과 테니스 인구가 많다는, 140년을 건너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최초의 본격적인 동호회는 1908년 탁지부(재정 관청) 관리들이 만든 회동구락부 — 한국 테니스도 동호회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 최초의 공식 대회는 1927년 경성에서 열린 선수권 대회로 기록됩니다.

구한말 관청 마당(庭)에서 치던 공이라 하여 정구(庭球)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고, 이 계보가 오늘날의 소프트테니스(정구)와 테니스로 갈라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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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아파트 코트의 시대

한국 테니스 저변의 뜻밖의 은인은 1976년 주택건설촉진법입니다. 5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에 운동장·테니스 코트·수영장·배구장 중 하나를 의무 설치하도록 했는데, 테니스가 고급 스포츠 이미지인 데다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작아 대부분의 단지가 테니스 코트를 골랐습니다.

  • 그 덕에 20세기의 아파트 단지와 학교에서는 테니스 코트를 쉽게 볼 수 있었고, 테니스는 중산층 생활체육으로 뿌리내렸습니다.
  • 21세기 들어서는 신축 단지에서 코트가 사라지고, 기존 코트도 주차장 전환을 원하는 주민과 존속을 원하는 동호인 사이 갈등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 야외 코트의 계절·소음 문제를 피해 실내 테니스장이 빠르게 늘어 2021년 기준 약 300곳이 운영될 만큼, 연습 환경의 중심이 실내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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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STONES

국제 무대의 이정표들

  • 1981년 이덕희 — US 오픈 여자 단식 16강. 한국 여자 테니스의 그랜드슬램 최고 성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1988년 김봉수·김일순 — 서울 올림픽 남녀 단식 나란히 16강. 한국 테니스의 올림픽 최고 성적입니다.
  • 2000년대 이형택 — US 오픈 16강 2회, 한국 남자 테니스 최초의 투어급 존재감으로 한 시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 2018년 정현 — 호주 오픈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한국 최초의 그랜드슬램 4강에 올랐고, 세계 랭킹 19위로 역대 한국인 최고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 2021년 권순우 — 투어 대회 단식 우승과 롤랑가로스 32강으로 정현 이후의 계보를 이었습니다.
  • 2022년 조세혁 — 윔블던 14세 이하부 우승.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입니다.

다만 배드민턴·탁구가 올림픽 금메달을 쌓아 온 것과 비교하면, 테니스는 아직 메달권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참여 스포츠로서의 인기와 프로 무대의 성과 사이 간극이 한국 테니스의 오래된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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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오늘의 한국 테니스

  • 2022년 기준 생활체육 동호회 수 국내 5위권. 국제 대회 성적 때문에 마이너해 보일 뿐, 물밑의 마니아층은 꽤 두터운 종목입니다.
  • 2020년대 초반에는 2030 세대의 유입으로 “테니스 붐”이라 불릴 만큼 코트 예약 경쟁이 치열해졌고, 패션·SNS와 결합하며 이미지도 젊어졌습니다.
  • 시청 문화도 특이합니다.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는 대회를 중계해도 시청률이 나오는 종목으로, 페더러·나달·조코비치 빅3의 팬덤이 그 기반이었고 지금은 알카라스와 시너의 경기가 그 자리를 잇고 있습니다.
  • 강습비와 장비 가격이 높아 “고비용 스포츠”라는 꼬리표는 여전하지만, 실내 코트와 중고 장비 시장의 성장으로 진입 장벽은 조금씩 낮아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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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과제와 미래

한국 테니스의 유망주들은 주니어 무대의 성적에 비해 시니어 무대에서 정체된다는 평가를 오래 받아 왔습니다. 그 원인으로 자주 꼽히는 것들입니다.

  • 국내 라이벌의 부재 — 서로를 끌어올릴 또래 경쟁자가 없으면 동기 부여가 무뎌집니다. 2010년대 중반 정현·권순우 등 또래 유망주들이 동시에 등장하며 이 문제가 잠시 풀렸던 것이 그 방증입니다.
  • 실업팀 시스템의 안전망 — 실업 선수로 경제적 안정이 일찍 확보되면서, 험난한 투어 도전을 계속할 유인이 약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협회 행정력 — 주니어 국제 대회 지원 부실 논란 등, 선수 육성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반대로 희망의 근거도 분명합니다. 생활체육 저변은 이미 상위권, 젊은 동호인 인구는 늘었고, 조세혁 같은 다음 세대가 자라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스타 한 명이 나오면 메이저로 반등할 수 있는 종목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코트에 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저변입니다.